유명 소설 ‘플랜더스의 개’ 주인공 네로는 마지막 순간 그토록 좋아했던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루벤스는 살짝 신성시 될 정도로 거장인 화가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루벤스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거장이지만 대량 생산으로도 유명하다는 점입니다. 대량 생산과 거장이라니? 뭔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루벤스 공방을 방문한 덴마크 의사 오토 스페를링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많은 젊은 화가들이 각자 캔버스에 작업하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루벤스가 먼저 초크로 드로잉하고 색을 지시해 둔 작품들이며 마무리는 그가 직접 했다. 이 그림들은 루벤스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큰 그림을 그리고 마무리만 했음에도 루벤스 본인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AI의 급격한 발전으로 두려워하는 개발자가 많습니다. 저 또한 약간의 두려움과 한 땀 한 땀 코드를 짜는 손맛을 잃어 조금 불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AI 툴이 생산성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루벤스가 큰 틀을 구상하고 그릴 영역을 젊은 화가들이 채웠듯, 개발자도 설계와 제품 개선에 더 신경쓰면서 구현 틀을 AI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루벤스가 직접했듯 개발자도 적절한 마무리를 통해 좋은 품질의 코드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AI가 도왔다고 해서 직접 짠 코드가 아니라고 비난할 사람은 없습니다.
저 또한 GitHub Copilot을 사용하며 AI의 도움을 받은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생산성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은 AI의 동작을 어느 정도 예상하여 도움이 될 만한 곳에서 간단한 주석과 몇 글자를 타이핑한 후 3초 정도 기다립니다. 그러면 제가 원했던 코드를 만들어줍니다. 살짝 틀렸다면 마무리 교정만 조금 해주면 됩니다. 원래라면 몇 분 걸릴 일을 몇 초 만에 해주니 너무 마음이 편합니다.
개발자의 진정한 역할을 생각하면 AI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발자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개발자는 코드만을 작성하지 않고 제품의 결함을 발견하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며 제품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지고 이는 아직 AI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발자 스스로 AI를 조수로서 이용해야 합니다. AI는 우리의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리자 또한 어떻게 개발자를 AI로 대체하여 인건비를 줄일까를 고민할 것이 아닌 AI를 더 잘 활용하여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편이 비용을 훨씬 아끼는 길이라 생각합니다.